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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나의 그녀는 강도입니다. -1부


1

2년전. 회사 동료와 술자리를 갖고 집에 돌아가는 길.
밤 10시쯤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당시 29살이었던 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내일은 토요일, 우리 회사는 휴일이다.
하루종일 뒹굴뒹굴하면서 게임이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퍼억~] 하고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뒷통수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뭐야...이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친 고통에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4

머리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뭐야? 어째서? 무차별 폭행?]

순간 뒷통수를 손으로 만졌다.
조금 젖어있었다.
어두워서 잘 안보였지만, 피가 난 것 같았다.
주저 앉아 있는 나한테 사람 그림자가 다가왔다.







8

[위험하다. 이대로 가면 또 당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 자식!! 가까이 오면 죽여버린다!]

마구 아우성치며 팔을 흔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배우기도 했고, 취미로 호신술을 배운적도 있다.
이런 상태라도 약한 녀석이라면 어느 정도 쫓아버릴 수 있으리라.
쫓는다고 했지만 사실 그때 내심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생각했다.







11

[이 자식!!]

[어디 덤벼봐!!]

나는 마구 소리쳤다.
통증과 어둠때문에 상대를 확실히 알아볼 수 없었다.
헌데 아무래도 범인은 1명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였다. 범인이 갑자기 달아나려고 했다.
이 녀석이 도망칠 생각이란 느낌에 나는 그 뒤를 쫓았다.
범인에 대한 분노로 어느새 통증도 잊어버렸다.







13

상대는 의외로 발이 느렸다.
점차 가까워지는 나와 상대의 거리.
상대는 꽤 작았다.
아니 작다는 걸 넘어...아이?
갑자기 앞에서 철 파이프가 날아왔다.
하지만 달리면서 제대로 조준도 못한 상태에서 던진 것인지
파이프는 나한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이런 걸 맞을 거 같냐!
왠지 조금 웃겼다.







15

상대와의 거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여자다. 그것도 꽤 작은 아이.






17

상대가 여자라 해도 흥분상태였던 난 멈추지 않았다.

[기다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나는 마구 소리치면서 머리채를 잡아챘다.
상대는 비명을 지르며 멈춰섰다.






18

[이것 놔아!!]

상대는 마구 저항하면서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확실히 여자, 거기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분노로 눈이 먼 나는 그대로 상대를 넘어뜨렸다.
상대는 가볍게 쓰러졌다. 그대로 바닥에 등을 부딪혔다.
웃~ 하고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상관치 않고 그대로 상대를 깔고 앉으며 멱살을 쥐었다.
그때 나는 너 죽여버린다...이런 말을 하면서 웃었다.
분노로 이성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19

이때 상대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꽤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김새였다.
눈이 좀 크고 드세보였다. 머리카락은 길고 살갗은 새하얬다.
그외의 얼굴 생김새도 꽤나 봐줄만 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보였다.
초등학생인거냐!







20

어려보이는 얼굴로 그녀는 나를 있는 힘껏 노려봤다.
아픔과 공포때문인지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걸 애써 참으며 나를 노려봤다.
천적에게 습격당하기 직전의 작은 동물 같단 느낌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파닥거리며 저항하는 여자애.
하지만 내가 멱살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했다.







21

여자애 눈에서 또록 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여자애가 불쌍해졌다.
멱살을 쥔 손을 조금 헐겁게 했다.
하지만 깔고 앉은 자세는 풀지 않았다. 도망칠테니까.
여자애는 재빨리 눈물을 닦았다.
나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이미 전부 다 본 상태다.
왠지 여자애의 그런 행동이 조금 귀엽게 보였다.
꼬맹이 주제에 무리하기는. 그런 느낌이랄까.







23

나 [일어나. 경찰서에 갈 거야.]

그렇게 말하며 여자애를 일으켰다.
여자애가 갑자기 얌전하게 변했다.

여자애 [경찰서는...가고 싶지 않아...]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 [나쁜 일을 하면 경찰한테 체포된다. 이게 사회의 룰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여자애 팔을 잡고 끌었다.
저항하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여자애.
귀찮게 됐다. 그 골목은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곳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 이 장면은 완전히
억지로 여자애를 납치하려는 변태로 밖에 안보인다.
나는 일단 여자애를 근처 공원에 데려갔다.







24

여자애를 공원 벤치에 앉혔다.
뒷통수가 아프다. 통증이 다시 되살아났다.
나는 여자애에게 물었다.

나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야? 모르는 사람을 덥치다니.]

여자애는 의외로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여자애 [돈이...필요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나이에 퍽치기냐.

나 [어째서 돈이 필요한데?]

여자애 [.......]

여자애는 입을 다물었다. 이 때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 여자애를 경찰에 넘길지 말지에 대해.

여자애 [...웃...]

여자애가 등에 손을 댔다가 작게 신음 소리를 냈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힌 부위였다.

나 [괜찮아? 아픈 거야?]

여자애는 입술을 깨물면서 아프다고 말했다.

나 [어째서 경찰서에 가고 싶지 않은 거야?]

여자애 [...부모님한테...연락이 갈 테니까...]

확실히 아직은 부모님이 무서울 나이니까.







25

나 [너 이름은 뭐야?]

여자애 [....하나...]

거짓말일지도? 아마 거짓말일테지.
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 나이라면 운전 면허 같은 것도 없을 테니까.

나 [몇살이야?]

하나 [....14살.]

초등학생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중학생이었다.
확실히 초등학생이 샐러리맨 뒷통수를 철파이프로 내려칠린 없겠지.
아니 중학생이라도 그러면 안되지만.







27

나 [너 학교는 제대로 다니고 있는 거야?]

이 질문을 한 순간.
하나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 질문의 무엇이 눈물샘을 자극한 거야?
우는 이유는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우는 모습만큼은 완전 아이였다.
이때 나는 이미 이 아이를 경찰에 넘길 생각을 지운 상태였다.
울지말라며 위로까지할 정도였다.







30

뒷통수에서 피흘리는 남자와 울고 있는 여중생.
생각해보니 상당히 카오스다.






33

나 [알았어. 경찰한테 안 넘기마. 대신 너네집 전화 번호 알려줘.
     너희 부모님한테 위자료 청구해야 될지도 모르니까.
     대신 경찰에는 안간다. 알겠지?]

잠깐 생각에 잠긴 하나. 너무 울어서인지 눈이 새빨갛다.

하나 [...그것도...아...안돼...]

나 [......]

사실 위자료를 청구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가르칠 요량으로 그렇게 위협한 것이다.
그럼에도 싫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이제 남은 판단은 이 아이에게 맡기자.
14살이라면 아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알아야 될 나이이기도 하다.

나 [그럼 너, 내 뒷통수를 때려서 상처낸 책임. 어떻게 질 생각이야?]







36

하나 [........]

또 생각에 잠긴 하나.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그녀가 내놓은 답은.

하나 [내가 위자료낼께. 그러니까 부모님한테 연락은...
        내 휴대폰 번호 가르쳐줄테니.]


그런 결론인가. 꼬마다운 발상이지만 그래도 좋다.
조금은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거기다 하나의 연락처를 알아두는 건 중요했다.
이후 후유증이 생겼을 때 연락처를 모르는 건 말도 안되니까.
하나의 휴대폰으로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이름은 몰라도 최소한 이 번호 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해약해버리면 끝이지만...

나 [자, 이제 그만 돌아가. 한밤중이니까.]

내 말에 하나는 벤치에서 힘없이 일어나 공원출구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상당히 외로워보였다.
나는 공원 벤치에 주저 앉았다.
흥분이 식는 것과 동시에 하나에게 맞은 부위가 욱씬거렸다.







38

한밤중의 공원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중학생때 공부도 안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야구하거나 게임하면서.
헌데 어째서 요즘은 하나같이 외로운 꼬맹이가 생기는 걸까.
이게 현대의 중학생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뒷통수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공원 입구에서 사람 그림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작은 그림자...하나였다.

나 [너....무슨 일이야?]

하나 [........]

하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서있었다.
그 모습에 한순간 보복하러 온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프라도 나오면 최악인데.
그러던 중 하나가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손수건이 들려있었다.

하나 [...이걸로...피 닦아...]






44

하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무릎에 손수건을 두고 다시 움직였다.
솔직히 놀랬다.
하나는 손수건을 건네준 뒤 바로 출구까지 달려갔다.
손수건...
그 꼬맹이, 의뢰로 여자다운 면도 있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나와 하나의 첫만남이다.
하지만 이 만남이 터무니 없는 결과를 불러들였다.
하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여자애가 아니었다.







47

다음날 일어나니 뒷통수가 엄청나게 아팠다.
휴일이라서 다행이다. 멍한 얼굴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스스로 응급처치로 붙인 가제가 떨어져 있었다.
역시 뒷통수 치료를 스스로 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그 시간에 여는 병원도 없었고...
병원이 싫기도 하고...
오전 동안은 게임이랑 TV를 보면서 보냈다.
그리고 하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위자료 내놓으라고 할까.
대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아무렴 좋으려나.
나는 하나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위자료는 필요없다. 이제 이건은 잊어버려라.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저녁 시간쯤, 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받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이걸로 끝내자.







48

신호 대기음. 한번, 두번, 세번...
역시 안 받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중.

하나 [...예...]

하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나 [아....어제 철 파이프로 머리 맞은 남자인데.]

조금 한심한 자기 소개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을 걸었다.

하나 [...예...]

하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위자료에 대한 건 생각할 필요 없어. 너도 그만 잊어.]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그리고 학교는 확실히 나가도록 해.
     힘들 일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되니까.]

나는 마구 폭주해서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이런 소리를 한 걸까.
아저씨가 된 증거다.
그런데 하나는 내 말에.

하나 [...가는 거...생각해볼께...]

나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 뿐이야. 그럼 안녕.]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걸로 모든 게 끝나, 하나도 곧 이걸 잊을 거라 생각했다.
나 역시 상처 치료할 때, 이따금 떠올리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처가 완치됐을 때쯤에는 하나에 대한 걸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러다 1개월 뒤.
하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52

하나의 번호는 남겨둔 상태였다.
지우는 게 귀찮아서 남겨둔 거 였지만.
일요일에 설거지를 하던 중 전화가 왔다.
착신 번호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구 번호인지 조금도 생각이 안났기 때문에.
나는 하나에 대한 걸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 [아....그녀석인가.]

나는 뒷통수를 만졌다. 아픔이나 상처는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그 여자애가 무슨 용무로.
나는 전화를 받았다.

나 [여보세요.]

하나 [...하나인데...기억 안나?]

이 목소리는 확실히 그때 그 꼬맹이.

나 [기억은 하는데...]

하나 [....응...]

잠시 침묵. 참지 못해 물어봤다.

나 [무슨 일이야? 전화를 하고.]

하나 [....응...]

하나는 조금 긴장하고 있는 듯 했다.

하나 [상처는 괜찮아?]

뜻밖의 말을 했다. 조금 놀랐다.

나 [아...완전히 나았어. 걱정하고 있었어?]

하나 [응...]

나는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는 3형제중의 막내로 여자 형제는 한명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하나가 말했다.

하나 [저...당신 이름은 뭐야?]







54

나는 입을 다물었다.
29살 아저씨한테 중학생이 당신이라니...
그 전에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당신...

나 [나는 xx라고 한다. 그보다 너 말하는 투를 좀 조심해.
     이래뵈도 난 연상이니까.]

가능한 설득하는 형태로 말했다.
최근 중학생은 이런 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인건가.

하나 [미안...]

하나는 의뢰로 착실히 사과했다.
이게 그 때 내 머리를 내리친 꼬맹이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나 [그래서. 오늘은 무슨 용무로 전화한 거야?]

나는 그걸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