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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나 [...응...그게...저기...xx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가본 적 있어?]
xx라니...경칭은 역시나 생략이냐.
뭐 그건 둘째치고. 어째서 유니버셜 스튜디오!!
나는 대답했다.
나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이라면 3번정도 가봤어.]
하나가 말했다.
하나 [그게...나...거기 가본 적 없는데...그게...]
이건...이건 설마?!
나한테 데이트 권유를 하고 있는 건가.
한달 전에 철 파이프로 머리를 내리친 상대를,
거기다 도둑질을 하려한 상대한테 데이트?!
나는 확인차 물어봤다.
나 [저기...혹시...너 거기 가고 싶은 거야?]
하나 [응!]
이 때 처음으로 하나의 밝은 목소리를 들었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연하의 꼬맹이를 보는 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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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먹을 로리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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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조금씩 >>1을 죽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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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 더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나 [진짜, 진짜...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나랑 가고 싶은 거야?]
하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 [사과하고 싶었으니까....그래서 유니버셜 스튜디오...]
뒷통수를 때린 사과의 표시가 유니버셜 스튜디오...
요즘 중학생은 다 이런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에...그럼 갈까, 유니버셜 스튜디오.]
하나는 정말 기쁜 목소리로 응! 이라고 대답했다.
2주일 뒤 일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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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을 내는 건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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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의 함정 wwwwwwwwwwwww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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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당일, 나는 지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 편의점 현급 지급기에서 돈을 뽑았다. 5만엔 정도.
그 아이는 나에 대한 사과라고 말했지만,
중학생한테 돈을 내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약속 장소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근처 역앞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진짜로 올까?
그렇게 생각하며 개찰구를 빠져나오니 하나가 서있는 게 보였다.
솔직히 다시 보기 전까진 생긴 걸 거의 까먹고 있었지만...
얼굴을 보자 알 수 있었다.
거기 서 있는 게 한달 전 내 머리를 내리친 여자애라는 걸.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입고 있는 복장은 확실히 중학생 여자애 수준.
T셔츠에 스패츠. 큐빅으로 장식된 구두.
완전히 꼬맹이였다.
함께 걷는 게 좀 부끄러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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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아이같은 복장에 안심한 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아이구나, 싶어서.
내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나 [오랜만~]
하나는 부끄러운 건지 내눈을 쳐다보지 않고,
응...이라고 대답했다.
나 [식사는 했어?]
하나 [아니...안 먹었어.]
나 [밥 먹으러 갈까?]
하나 [에에~난 유니버셜 스튜디오 빨리 가고 싶어.
밥은 놀고 나서 먹자. 응~?]
갑작스레 나한테 응석을 부리며 말했다.
진짜 여동생이 생긴 것 같아서 왠지 흐뭇한 느낌이었다.
나 [Ok! 그럼 가볼까!]
그렇게 말한 뒤, 우리는 입장 게이트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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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은 당연히 내가 샀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대접받아야 하지만.
하나는 중학생이니까, 아무래도 좋다.
하나 [엄청 두근 두근거려~♪ 쥬라기 파크랑 죠스는 꼭 보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떠들었다.
왠지 그걸로 좋단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들른 유니버셜 스튜디오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옛날에는 좀 더 활기찼었는데.
ET, 백투더 퓨처, 백드래프트.
그리고 하나가 기대했던 쥬라기 파크와 죠스.
하나는 어트렉션 전부다 재미있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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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마치 아이처럼 기뻐했다.
보고 있는 내가 더 기분 좋아질 정도로.
뭔진 모르지만 뿔같은 게 달린 헤어밴드가 갖고 싶은 듯 했다.
사줬더니 바로 머리에 쓰고 다녔다.
우디 우드펙커를 발견하곤 그대로 달려가
폭~ 하고 기쁜 얼굴로 안기기도 했다.
역시 아직 꼬맹이구나.
하지만...
하나는 이렇게 마냥 귀여운 여자애가 아니었다.
한달 전, 내 머리를 철 파이프로 내려쳤던 본성은
아직 그녀의 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을 뿐.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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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크림 사주고, 선물 사주고...
사과 할거라 해놓고 결국 하루종일 내 돈으로 때웠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하나는 고맙다면서 굉장히 기뻐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빛나는 듯 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주고, 작별할 시간이 왔다.
역 개찰구 앞에서 하나를 전송하기로 했다.
전철 티켓 역시 내가 사줬다.
헌데 나는 이때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매표기에서부터 느낀 위화감.
하나는 끝까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줬다.
즐거웠다.
이 날 하루에 대한 나의 솔직한 감상이다.
이제 두번 다시 하나와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꼬맹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니 꽤 솔직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애였다.
분명 가정 불화같은 게 원인으로 외로웠던 것이리라.
언젠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전철에 타서 귀가 하는 중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감상은 하나에 의해 전부 깨부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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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비었다.
하나와 놀면서 쓴 돈은 2만 5천엔.
아무리 많이 썼어도 3만엔 내외.
헌데 지금 남은 금액은 5천엔.
이건 대체 무슨 의미지.
다시 생각해봤지만 대답은 한가지였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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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무서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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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리고 언제야?
계속해서 생각을 이었다.
레스토랑...내가 화장실에 갔을 때인가!
나는 평소 손가방에 지갑을 넣고 다닌다.
그 가방을....그 땐 내자리에 놔두고 나왔다...
말을 잃었다.
돈문제보다 오늘 하루 하나와 즐겁게 보낸 시간을 생각하니
이상하게 슬퍼졌다.
하나의 웃는 얼굴이 생각나자 배신당한 느낌과
안타까운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 바로 들킬 만한 짓을 한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가 이런 짓을 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과
어째서 이런 일을 했는지 알고 싶단 생각이 교차했다.
전화를 해서 확인할까?
아니...이제 더 이상 연관되지 말자. 그 여자애는 진짜 도둑이야.
이런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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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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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딱 한번만 더 전화를 해보자.
분명 받진 않겠지.
방금 전에 돈을 훔친 당사자의 전화를 받을리 없을테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착신 거부가 뜰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
받지 않으면 그대로 인연을 끊자.
만일 전화를 받는다면....추궁해보자.
전화를 거는 손이 이상하게 떨렸다.
목이 말랐다.
나는 캔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전화를 걸었다.
긴장된다.
신호음이 들렸다.
뜻밖에도 착신 거부로 돌리진 않은 모양.
하지만 신호음만 들릴 뿐, 하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끝인가...배신 당한 걸로.
나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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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애초에 더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안타까웠다.
머리를 다친대다 또 다시 돈까지 뜯겼다.
최악이구나. 나는...
조금 웃겼다.
눈을 감고 그대로 자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었다.
상대는...하나였다.
깜짝 놀란 나.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나 [여보세요...]
위험할 정도로 목소리가 가라앉은 상태로 나왔다.
긴장한 상태.
그런 내 상황과는 달리 하나는 터무니 없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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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전화 못받아서 미안~♬ 방금 샤워한다고 못받았어.(웃음)]
나 [...뭐?]
뭐지, 이 텐션은.
나는 놀랐다.
전화가 온 것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인데
하나의 말투에는 어두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 [오늘 굉장히 즐거웠어. 백드래프트, 의외로 재미있었구.]
나 [.............]
하나 [선물로 사준 초콜렛, 엄청 맛있었어. (웃음)]
....어째서....어째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난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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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착각?
난 지갑에 5만엔이나 넣지 않은 건가?
하지만...
나는 지갑에 넣어둔 ATM 영수증을 확인한 상태였다.
그리고 돈도 많이 쓰지도 않았다.
곤혹해하는 나를 신경쓰지도 않고 하나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하나 [다음에 또 데려가 줘. 다음엔 아침부터 가보고 싶어. (웃음)]
나 [.........]
물어봐야 한다. 확인해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물어봐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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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했던지 이렇게 말했다.
하나 [괜찮아? 어디 아파?]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하나에게 돈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정말 도둑질을 한 상태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거라면
이 여자애는 확실히 이상하다. 근성이 썩었어.
나는 하나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나 [저기...하나...기분 나쁘게 듣지마.]
하나 [무슨...?]
하나는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나 [집에 와서 지갑 안을 확인해봤어. 그랬더니...]
하나 [........]
나 [남겨둔 돈이 이상하게 적었어.]
하나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나 [....하나가....가져간...거야?]
나는 그대로 핵심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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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아니라고 해줘!
너무나 무른 태도.
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봤던 하나의 웃는 얼굴이 생각나자
하나를 믿고 싶어진 것이다.
하나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나.
나 [아니라고 한다면 사과할께. 그러니 사실을 가르쳐줘.]
그러자 하나가 흠칫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나 [....내가...]
나 [내가...]
하나 [돈...가져갔어...]
나 [.............]
하나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만 흘러갔다.
140
두번째인가.
이 여자애에게 당한건.
나는 정말로 무르다. 너무나 너무나 무르다.
공원에서 빌려준 손수건도.
오늘 봤던 웃는 얼굴도.
모두다 거짓말 이었던 건가.
최근 꼬맹이들은 전부 이런 건가.
사과는 커녕, 잘못을 용서해준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이제 됐어.
이 꼬맹이랑 관련되는 건 내쪽에서 사양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나 [그래...그 돈은 줄께. 이제 됐어.]
하나는 사라질 듯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미안....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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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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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 더 필요없어. 이제 너랑 관련되고 싶지 않아.]
하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 [그럼 끊는다.]
그때였다. 하나는 큰소리로 소리치며,
하나 [기다려! 기다려! 끊지마, 끊지마.]
나 [어째서?]
이 여자애가 생각하는 걸 모르겠다.
피해자인 내가 끝내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가해자가 그걸 멈추려 한다.
하나가 말했다.
하나 [돈...돌려줄께....진짜...미안...]
나는 매정하게 말했다.
나 [필요없어. 끊는다.]
그러자 하나는 수화기 저편에서 마구 울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된다.
이렇게 바로 돌려줄 거라면 대체 왜 훔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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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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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한가지 물어봐도 돼?]
하나 [훌쩍...훌쩍....응....]
나 [훔친 돈으로 뭘 사고 싶었던 거야?]
하나 [...DS...]
...게임기냐.
하나가 이어서 말했다.
하나 [...내일 밤...훌쩍...9시...그 공원에서...기다릴께...훌쩍.]
나 [........]
하나 [...돈...돌려줄테니까...]
나 [....아직 안 쓴 거야?]
하나 [...응....훌쩍...]
나 [약속은...할 수없어. 안 갈지도 몰라.]
하나 [기다리고...훌쩍...있을께.]
그리고 통화는 끝.
그 눈물은 거짓말? 아니면 진심?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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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있는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야 할까? 가서 뭘할까?
돈문제는 신경 안쓴다.
솔직히 말해 두번이나 당해놓고 한심하단 생각도 들지만,
어제 울면서 말한 건 거짓말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놀면서 기뻐했던 모습도.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쌓은 상식으론
사과하는 대상에게서 돈을 훔친 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그렇게 어설픈 방식이라니, 뭘할 생각이었던 걸까.
저녁이 가까워오자 나는 한가지 결심을 굳혔다.
한번 더 만나자.
그 여자애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가.
꼬맹이라고 해도 14살.
나름대로의 인생관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알고 싶었다.
그날 억지로 잔업을 하며 시간을 때우다
약속 시간쯤해서 하나를 만나기 위해 공원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