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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소설풍으로 써본다.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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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나는 대학에 떨어졌다.
벚꽃이 흩날리는 3월, 합격 발표 게시판 앞에서 기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침울한 표정이었다.
모두들 날 신경 써줬지만 분위기를 읽고, 나는 먼저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친구 사이는 담박했으니까.
사립쪽은 원서도 넣지 않았으니까, 재수 결정.
집에 돌아가면 우선 입시 학원에 등록하러 가야 된다.
우울한 기분으로 지하철에 올라타 창 밖을 바라보던 중,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 [혹시 xx 대학 수험 치셨나요?]
나 [....응.]
여자 [다행이다...시험장에서 서로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갑자기 이런 말하면 좀 이상하려나요. ww]
여자애는 상당히 들떠있었다.
아마도 합격한 거 겠지.
합격 발표전에 물들였는지, 머리색도 갈색으로
이미 마음은 대학에 대한 걸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자애를 상대할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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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책 같은 건 언제 구입할 수 있을까요?]
여자애는 즐거운 듯이 나에게 질문했다.
나 [3월쯤으로 기억하는데...]
나도 합격할 생각이었으니까...
합격한 뒤의 일 같은 건 어느 정도 조사해뒀다.
이제 와선 무의미하지만...
여자 [저~ 괜찮다면 책 사러갈 때 같이 가지 않을래요?]
앞으로 나와 학우가 된다고 착각한 여자애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물론 연애같은 건 아니고 낯선 땅에서 한시라도 빨리 아는 사람을 만들고 싶은 거 겠지.
여자애 눈에 나는 분명 합격한 사람으로 보이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거짓말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이 거짓말에서 시작된 것 같다.
....같이 책 사러 갈까?
그 후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나는 그 아이와 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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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어 정신적 데미지에서 회복한 나는 입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반드시 합격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재수생으로써 하루 하루를 열심히 공부했다.
이 무렵쯤엔 지하철에서의 메일 주소 교환을 완전히 잊어버린 상황
그러다 4월 중순쯤 되었을 때 였다.
[오랜만~ 어디 있어? 나는 xx에 있는데.]
목욕하는 동안 메일이 와있어서 확인했더니 낯선 주소에서 온 메일이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그 때 그 아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죄악감과 후회가 들었다.
[아...미안, 책사러 가는 거 같이 가기로 했는데...깜빡 했어.]
5 분뒤에 답장이 왔다.
[신경쓰지마. 그런데 동아리는 어디 들거야?]
일순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불합격했다고 밝힐 수 없었다.
[동아리는 안들어갈거야.]
[아직 안 정했어? 그럼 같이 배드민턴 치는 건 어때?]
배드민턴이라...
재수생 생활에 활력소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심코...
[그럼 배드민턴 부에 들어갈까.]
이런 메일을 보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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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것 뿐이라면 그걸로 끝났을지 모른다.
허나 나는 대담하게도 다음날 대학 캠퍼스로 그 아이를 만나러 갔다.
여자 [아! 오랜만~ w]
나 [응, 그러네.]
그 여자애는 못본 사이 상당히 예뻐져있었다.
하얀 프릴이 달린 원피스에 푸른색 상의 그리고 검은 부츠.
그 애의 옷차림은 긴 생머리와 잘 어울렸다.
나 [상당히 세련되게 변했네.]
여자 [진찌? 고마워 w]
여자애는 내 칭찬을 환한 미소로 돌려줬다.
그리고 우리는 배드민턴 연습을 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선 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창 뭔가 설명하고 있었다.
붉은색 짧은 바지, 반팔티를 입은 부장은 라켓을 한 손에 들고 스매쉬 자세를 선보였다.
여자 [왠지 즐거워보여.]
나 [그러네...]
나는 대학생이 아니라는 게 들키진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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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끝나고, 부장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부장 [너희들 신입생?]
부장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여자 [네, 저희들 배드민턴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만.]
여자애도 웃는 얼굴로 답했다.
얼굴이 창백한 사람은 나 뿐이었다.
머릿속은 여기까지 따라온 나에 대한 후회로 가득했다.
부장 [너희들 무슨 학부?]
여자 [둘 다 이학부 입니다.]
대학 시험장은 학부별로 나눠져 있었으니 여자애의 추측도 틀린 건 아니다.
부장 [그런가, 1학년은 이래 저래 힘드니까 노력하도록.
그럼 오늘은 라켓은 빌려줄 테니까, 셔틀 치는 연습이라도 해봐.]
부장의 지시에 근처에 있던 키 큰 사람이 라켓 2개를 가져다 줬다.
부장 [너는 이쪽 코트, 그리고 너는...일단 저쪽.]
우리 두명은 서로 다른 코트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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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 부탁합니다.]
내 상대는 키가 작은, 140cm가 조금 넘어 보인는 꼬맹이였다.
솔직히 말해 외형적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이래뵈도 나는 고등학교때 제법 배드민턴을 잘 쳤으니까.
신입생 주제에 머리카락도 벌써 화려한 금발.
눈초리도 상당히 나빴다.
꼬맹이 [빨리 쳐.]
나 [아...미안.]
처음은 가볍게 서브 했다.
상대로 가볍게 쳐냈다.
꼬맹이 [좀 더 강하게 쳐도 괜찮아.]
꼬맹이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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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꼬맹이의 금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이때다 싶어 혼신의 일격을 먹였다.
왕년에 배드민턴으로 날린 나를 우습게 보지마라아아아!!
....하지만....
꼬맹이 [늦어.]
시원스레 쳐냈다.
그리고 나는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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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체험 입부도 끝나, 부장이 신입생들을 모았다.
바닥에 주저 앉아 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길었지만, 줄이자면 배드민턴 동아리는 좋은 곳이니까 들어와라... 라는 것
부장이 말을 하는 사이 나는 근처에 앉아 있는 꼬맹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 [배드민턴 잘치던데... 배드민턴 부에 들었던 적 있어?]
꼬맹이 [중학교 때.]
꼬맹이는 앞을 보면서 대답했다.
이야기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그래서 다시 말을 걸어봤다.
나 [여기 들어갈 거야?]
꼬맹이 [들어갈 거야. 너도 같이 하는 건 어때?]
뜨거운 시합을 했다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너라니...
조금 화가 났기에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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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오늘 시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친구를 만들 생각들인 걸까.
꼬맹이 [여자 친구랑 같이 온 거야?]
꼬맹이가 말을 건네 왔다.
나 [아, 뭐 그런 거려나.]
꼬맹이가 조금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꼬맹이 [너, 별로 운동 잘하는 건 아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에 울컥했다.
내가 꺼림직한 신분만 아니라면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들키면 인생 끝이니까,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꼬맹이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걸어도 무시하자, 그렇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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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뭐, 들어간다고 하면 환영하겠지만 말야.]
그건 부장이 할 말이다, 너.
뭘 그렇게 잘난 척 하는 거야. 화난다.
하지만 이 꼬맹이랑도 더이상 만날 일은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대답했다. 그러며 여자애쪽을 돌아봤다.
여자애는 조금 전 시합을 했던 남자와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 [아, 대화중에 미안한데. 슬슬 돌아갈 시간이야.]
여자애는 좀 더 있고 싶었던 것 같지만 여자애의 상대였던 성실해보이는 남자는,
남자 [나는 다른 동아리도 둘러보고 싶으니까, 그럼 다음에 봐요.]
남자는 바로 나갔다.
돌아 가는 길, 지하철에서 여자애가 말했다.
여자 [나 배드민턴 부에 들어갈 꺼야.]
여자애는 기쁜 듯이 말했다.
그 남자의 영향이 틀림 없는 것 같다.
나 [그런가.]
여자 [배드민턴 부 같이 들어가지 않을래?]
나랑 이 대학의 연결점은 이 여자애 정도밖에 없으니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나 [그럼 배드민턴 부로 할까.]
여자 [그렇게 해.]
그 꼬맹이랑 부딫히는 건 화나지만 그것도 더 이상 연관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거기다 이런 짓까지 했으면서 동아리에 들지 않는 건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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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입시 학원이 끝나면 바로 배드민턴을 하러 갔다.
부모님에게는 기분 전환 삼아 친구랑 운동하고 있다 말해뒀다.
진실을 알게 되면 무슨 소릴 할 지...
나를 불쌍히 여겨 그냥 인정해줬을까?
아니면 그런 건 대학들어가서 하라고 화를 냈으려나?
아무튼 이런 식으로 2주 정도가 지나자 배드민턴 부에 있던 신입생 7명과 사이가 좋아졌고
연습에 매진하며 배드민턴 실력도 늘어났다.
나는 그 때까지 제멋대로 치는 편이라 자세가 엄청나게 엉성했지만,
꼬맹이와 선배들의 지도로 어떻게든 자세를 정돈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5월달, 처음으로 학교간 시합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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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골든 위크였지만 입시 학원에서 통상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뭐 어쨌든 나는 결석했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그 날은 나는 다른 부원들과 함께 시합을 하는 체육관에 나갔다.
[신인전] 이었기에 2학년 이상 부원은 보이지 않았다.
공식 시합도 아니고 교류 시합이니 더욱 더 그런 거 겠지.
우선 복식조 시합이 있었다.
부장의 제안에 따라 나는 꼬맹이랑 같은 조가 되었다.
이유는 내가 가장 서투르고 꼬맹이가 가장 능숙하기 때문이라고.
첫 시함
나는 꽤 순조롭게 시합을 풀어갈 수 있었다.
꼬맹이의 실력이 원체 뛰어나 상대는 우리가 치기 쉬운 위치로 쳐내는 수외에 없었다.
첫시합은 어떻게든 이겼다.
시합이 끝나, 꼬맹이가 [수고했어.]
평소처럼 틱틱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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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은 언제 불쑥 찾아올지 모른다.
때는 여름이 막 시작되기 직전, 그 무렵 나는 꼬맹이랑 빈번하게 메일을 주고 받곤 했다.
사귀는 건 아니지만.
하루에 20통 이상은 메일을 나누곤 했다.
화제는 정말 아무래도 좋은 일이나 애완 동물에 대한 것등
정말 사소한 것들 뿐이라 금새 까먹을 정도였다.
내가 긴문장을 보내도 꼬맹이는 [응.] 이나 [그렇구나.] 같은 내용만 돌려줬다.
이모티콘도 없는 것이 여자랑 메일을 하는 느낌이 안들 정도였다.
나와 함께 배드민턴 부에 들어왔던 여자애는 예상과 달리 자기네 학과 남자가 사귀고 있었다.
분명 배드민턴 부 체험 입부날 만난 성실한 남자랑 엮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나의 파국은 이 성실한 남자에게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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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남자 친구 중에 우연히도 내 고등학교 동창이 있었다.
그 남자는 동창에게 어떤 계기인지 몰라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동창한테서 온 메일을 보고 아연실색한 나.
[오랜만~ 후기로 합격했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지~
지금까지 신경쓴다고 메일도 못했잖아.]
대충 줄이자면 이런 느낌.
불합격된 걸 알고 나서 한번도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
신경 써준 것도 있겠지만, 결국은 재수생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거 겠지.
나는 동창에게만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걸어, 동창과 상담을 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동아리 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
분명 아군이 되줄거라 생각해 속내를 털어놨으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너...그건 안되잖아...]
그가 말하길, 이대로 부에 계속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내년 신입생으로서 입학하고 나서도 늦지 않다.
바로 배드민턴부를 그만둬라.
말해선 안되는 녀석이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후회하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동창의 말을 무시한다손 쳐도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면 그걸로 끝.
배드민턴부를 그만 두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나는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로썬 시험에 떨어진 내가 대학생인 척 하고 다니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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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무리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배드민턴 부를 나가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수험 공부에 좀 더 열중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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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 놓으려 결정한 날,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연습이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연습이 끝나고 반성회가 시작됐다.
사실 1학년들만 있을 때 커밍아웃하려 했지만,
시간이 없었기에 선배들도 있는 자리에서 털어놓기로 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무서웠다.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 내가 커밍 아웃 하는 순간,
얼음과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볼 가능성도 있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견딜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동창에 의해 알려지게 되있다.
결국 인과응보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반성회가 끝나 해산하는 분위기가 됐을 때 나는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나 [부장!]
부장이 아무 생각없이 이쪽을 쳐다봤다.
주장 [뭐야?]
손을 든 기세로 말했다.
나 [나 재수생이니까 동아리는 여기서 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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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다.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자애는 날 보며 농담이지? 라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예 이쪽을 안 보는 사람도 몇명있었다.
꼬맹이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딱딱한 표정으로 이쪽을 봤다.
[어? 진짜?]
부장은 바보같은 얼굴을 하며 내게 말했다.
[예, 나 학적 없어요.]
이 말을 한 순간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내 의지와 달리 눈에 눈물이 고였다.
[...진짜인 건가...]
부장은 곤란하단 얼굴을 하며 더 이상 아무말도 안했다.
다른 사람들도 움직임을 멈췄다.
평화로웠던 하루의 끝이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 같아, 나는 엄청나게 쫄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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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꼬맹이가 말했다.
[굳이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라도 괜찮잖아. 매니저도 다른 학교 사람이고.]
이 말에 사람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여자 [그래, 뭐 딱히 나쁜 건 아니니까.]
성실한 남자 [입 다물고 있었던 건 조금...]
꼬맹이 [별 문제는 아니야.]
나는 흘러가는 분위기를 가슴을 졸이며 지켜봤다.
꼬맹이는 나를 옹호하는 쪽이었고 성실한 남자랑 몇명은 조금 심했다...라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와 같은 심정으로 서있었다.
그러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부장이,
[하지만 대회중엔 소속된 팀과 같은 학교에 재적해야 된단 된단 룰이 있는 곳도 있으니까.]
이렇게 해서 반대파가 힘을 얻었다.
대회'만' 따지는 거면 나는 안 나가면 되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영원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참을 수 없게된 나는,
[지금까지 신세졌습니다.]
라고 말하며 부실에서 나왔다.
결국 나는 이런 압박을 견딜 수 없는 겁쟁이였던 것이다.
꼬맹이를 볼 낯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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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기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고 나선 대학 정문까지 달렸다.
문에 도착했을 때, 꼬맹이가 따라와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 녀석이 따라올 이유는 없었다.
나는 외로운 기분도 들었지만, 동시에 안심했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왠지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이 지금의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처럼 생각됐다.
그래서, 잡지를 하나 들고 서서 읽기 시작했다.
3 페이지 째를 읽었을 때였다.
누군가 내등을 엄청나게 세게 후려쳤다.
상당히 아팠다.
나는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 잡지 진열대로 넘어졌다.
내가 넘어짐에 따라 진열대도 넘어졌고 이에 잡지들이 바닥으로 마구 흩어졌다.
근처에 서서 잡지를 읽던 모자쓴 청년이나 아저씨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른 돌아보니, 내 뒤에는 꼬맹이가 서있었다.
꼬맹이는 울고 있었다.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렸다.
[너...어째서....]
분노 때문인지, 슬퍼서인지 몰라도 꼬맹이의 목소리를 떨려 나왔다.
내가 어렸을 적 강에 빠졌다가 살아나왔을 때 부모님이 내던 소리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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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어째서.....]
어째서 다음에 뭔가 말했던 것 같지만, 알알들을 수 없었다.
나는 주위 시선이 신경 쓰였기에,
[우선 밖에서 얘기하자.]
그렇게 꼬맹이를 설득하려 했다.
허나 꼬맹이를 어깨를 잡은 내손을 강하게 떨쳐내더니 나를 지긋히 노려봤다.
무서웠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공포를 체험했다.
어째선지 꼬맹이의 눈이 무서웠다.
편의점 안은 굉장히 조용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띵똥하면서 편의점의 자동문이 열렸다.
거기엔 배드민턴부 1학년 모두와 부장이 와 있었다.
상황을 본 주장은 꼬맹이의 팔을 잡으며 나한테 멀리 떼어놓으려 했다.
키175의 남자가 140 정도의 여자의 시선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만,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꼬맹이가 나를 명백히 압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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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는 부장을 향해,
[놔주세요. 이제 아무렇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부장의 손을 떼어놓더니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부장은 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의 결론은 보류하는 걸로 할께. 괜찬다면 내일도 평소처럼 와 줘.]
그렇게 말하곤 부원들과 함께 편의점에서 나갔다.
돌아가는 부원들 중, 나와 함께 입부한 여자애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던 게 슬펐다.
나는 쓰러진 진열대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일의 전말을 지켜보고 있던 점원이 내가 안되보였던지,
뒷정리를 대신해주겠다고 말했기에 나는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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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나는 꼬맹이에게 오늘 일에 대한 메일을 보냈다.
[오늘 일은 미안. 그리고 옹호해줘서 고마워. 기뻤어.[
메일을 보내고 휴대전화 앞에서 30분을 기다렸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두번째 메일을 작성했다.
[나, 너 좋아해. 대학 합격하고 나면 나랑 사귀어 줘.]
....이건 보내지 않았다.
쓴 문장을 지우고 바로 휴대전화 폴더를 내렸다.
그리고 평소처럼 목욕을 하고 예습을 한 뒤 잤다.
꼬맹이의 답장은 결국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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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얼굴을 내밀기 꺼림직한 기분이 들어 배드민턴 부를 쉬었다.
다음 다음날도 쉬었다.
그 다음의 다음날도....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험만으로도 벅차 결국 배드민턴 부에 가지 않게 되었다.
배드민턴 보단 눈앞의 모의 시험 결과에 열을 올리는 매일이었다.
입시 학원에서도 친구가 생겨, 수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웠다.
...꼬맹이에 대한 생각은 가끔 했지만, 연락을 취할 용기는 없었다.
물론 1달에 한번 근황 보고식으로 10줄정도 짤막하게 메일을 쓰긴 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새인가, 가을도 깊어져 10월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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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소처럼 학원에서 돌아오던 중 편의점에 들렸다.
꼬맹이에게 등을 얻어맞았던 그 편의점이다.
모의 시험 점수가 좋았던 나는 오랜만에 점프나 읽어볼까 해서 찾아갔던 것이다.
그러다 거기에서 낮익은 금발 머리를 보았다.
머리카락을 스트레이트하게 편 꼬맹이였다.
녀석은 잡지 진열대 근처에 서서 잡지를 읽고 있었다.
어깨에는 라켓, 분명 오늘 연습이 빨리 끝난 거 겠지.
나는 일순간 망설였지만,
나 [오랜만이야.]
꼬맹이 [아. 오랜만.]
꼬맹이는, 싱긋 웃었다.
한순간 각오를 굳혔지만, 꼬맹이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담백했다.
나 [최근 어떻게 지내?]
꼬맹이 [동아리 때문에 바빠 w 그쪽은?]
나 [나는 수험 공부 w]
꼬맹이는 힘들겠네, 라고 말하며 잡지는 내려놓았다.
꼬맹이 [그럼 다음에 또 봐 w]
꼬맹이는 웃으며 말했다.
나 [뭔가 약속이라도 있는 거야?]
꼬맹이 [응, 데이트 w]
그 말을 남기고 꼬맹이는 편의점에서 나가 눈 깜짝할 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같은 게 예전보다 세련됐다고 할까,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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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면서 계속해서 꼬맹이에 대한 생각만 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꼬맹이와 그 데이트 상대에 대한 생각에 머릿속이 가득 했다.
잠시 뒤, 내가 꼬맹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꼬맹이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어.
휴대폰으로 메일을 보내려 했지만, 없는 주소라 나왔다.
어느새인가 주소를 바꾼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후회했다.
꼬맹이에게 고백하려 했다면 등을 맞은 그 순간에 했어야 했다.
아니 그 날 이후 몇 주안에...
아니, 아니, 아니....
허나 아무리 생각한다해도 지나간 시간이 되돌아오진 않는다.
몇번이나 단념하려 했지만, 그 때마다 꼬맹이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나날.
그러는 중 재수생 생활 마지막 고비인 전국 모의 시험 날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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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보면서도 나는 꼬맹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꼬맹이의 그림을 시험지 귀퉁이에 그려넣기도 했다.
완벽한 망상가였다.
마지막 모의 시험이라 기합을 넣고 열중한 친구들과 달리 나는 완전 딴 생각에 잠겨있었다.
고민해봐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것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모의 시험 성적표는 다음달에 올테지만, 결과는 벌써 짐작 할 수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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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성적표가 올 때까지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 나는 조용히 보냈다.
가루눈이 내리는 가운데 나는 마지막 준비에 매진했다.
배드민턴 부에 반드시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았지만.
내년에 다시 한번 더 그 학교 문을 밞고 싶단 생각이 강했다.
꼬맹이에 대한 망상도 잦아들어 이전처럼 얽매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분명 주위 수험생들의 진지한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좋은 징조였다.
그래서 평소보다 좀 더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나온 길이었다.
저녁 10시쯤 됐을까?
역으로 가는 길에 멀리서 아는 사람이 지나가는게 보였다.
꼬맹이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